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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야 하는 길



39살의 아내와 46살의 남편. 우리는 3년전 결혼한 만혼 부부이다. 혼자의 자유로움이 좋다면서도 독립도 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부모님의 애를 충분히 태우던 딸이었다. 부모님의 연애 압박에, 면피나 하려고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만나, 교제를 시작한지 141일만에 결혼식을 치렀다.

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편안하고, 좋아서 결혼을 선택했고, 결혼을 하고보니 더 행복해서, 이 행복을 함께 누릴 사람을 더 만들고 싶었다. 좋은 부부는 좋은 부모가 될 것이고, 행복한 부부의 아이는 같은 행복의 울타리 안에서 자랄 것이라 생각했기에 어서 빨리 아이가 찾아오길 바랬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우리는 처음으로 임신테스터기 두 줄을 보았다. 우리 부부만큼이나 소식을 기다리던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리고, 산부인과 예약을 잡았다. 하지만 심장소리를 듣기도 전에 아이는 떠났다. 둘 다 노산의 나이에도 자연임신이 가능한 걸 확인한 것으로 위안을 하자며 서로를 다독였지만, 상실감은 상당했다.

그 후, 매달 기대하고, 매달 실망했다. 한 달의 절반은 임신 초기 증상을 검색하며 보냈던 것 같다. 괜스레 속도 더부룩한 것 같은 느낌에, 잠도 쏟아지고, 미열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기대를 한가득 품고 임신테스터에 손을 대면 단호한 한 줄. 가끔은 “마음의 눈”이 희미한 두 줄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남편의 재판독 결과 늘 한 줄이었다. 테스터가 한 줄이라는 확신이 들면 임신 증상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10개월을 더 보내고, 우리부부는 난임센터를 찾았다.

의학의 힘을 빌어, 한 달이라도 임신 시기를 당겨보자하며 시작한 난임치료. 난임치료를 위한 검사결과, 우리 부부는 자연임신은 가능하지만 확률상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기에, 인공수정보다는 시험관 아기 시술이 나을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그리고 결정을 하면 다음 생리주기부터 시도하자고 하셨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늦깎이 부부인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든 것은 견딜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남편은 본인의 몸이 아니었기에 걱정이 더한 것 같았다. 시험관 아기 시술 결정을 한 그 때부터 시술 회차를 거듭하는 동안 내가 너무 힘들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말했다. 돌이켜보면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동안 마음은 나보다 남편이 더 많이 쓴 것 같기도 하다. 내 마음과 몸이 시키는대로 행동하는 동안 남편의 시선은 늘 나를 향해 있었으니 말이다.

난임치료 과정은 부부 모두에게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호르몬 주사로 인해 신체 컨디션은 난조가 되고, 마음은 예민해진다. 시술 회차를 거듭할수록,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주변의 임신 소식, 심지어 TV속 연예인의 임신 뉴스에도 심경이 울렁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되어야 하기에 늘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 몸과 마음의 어려움을 알아주길 바라며 예민함을 드러낼 것인가, 상대방도 이 힘든 길을 함께 하는 동행이니 다독일 것인가의 갈림길. 난임치료의 성공은 결국 여성의 몸에서 임신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남편은 한 발 뒤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모양새라, 가끔은 나 홀로 길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이 간혹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가는 길이고, 함께 극복해야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곁에 있는 남편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의 모습을 찾아가며 이 길을 함께 걸었다.

이렇게 서로 마음을 헤아리며 난임치료를 하다보면 또 다른 현실이 부부 앞에 나타난다. 난임치료가 나의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그저 막연하게만 다가오던 돈 문제. 결혼을 하면 임신은 당연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고, 의학의 힘을 빌리면 단번에 임신소식이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비용이 비싸기는 해도 한번만 무리하면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난자 채취를 위해 과배란 주사를 처방받아,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한다. 과배란 주사를 처방받을 때마다 청구되는 10~30만원의 병원비. 본인부담금보다 약 2배 정도 더 높은 공단부담금이 명시된 진료비 영수증을 보며 건강보험의 혜택이 이렇게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서도 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확인해야한다. 난포가 잘 자라고 있는지, 얼마나 자랐는지, 언제쯤 채취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조정을 할 수도 없는 스케줄이 중간중간 끼어든다. 난자 채취를 하기까지 병원 진료를 다섯 번 받았다. 얼추 계산해보니, 건강보험 적용되기 전 정부지원금 기준이었다면 우리 부부는 난포를 키우며 지원금을 다 썼을 듯하다.

난자를 채취하는 날,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난임센터를 찾았다. 사전에 인터넷 후기들을 찾아본 바로는 복수가 차는 경우도 있고, 통증이 있는 경우도 있다해서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약간 욱신거리기만 할 뿐 괜찮았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배아가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는 것 뿐이다. 난자 15개를 채취하고, 과배란 주사 대신 프로게스테론 8% 질정을 처방받았다. 영수증의 금액이 45만원으로 훅 올랐다. 공단부담금은 100만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난자 15개 중 9개가 수정에 성공했고, 3일 배양 배아 5개, 나머지는 좀 더 배양 중이라고 한다. 아, 수정도 다 성공하는 게 아니구나. 어째 점점 좁아지는 통로로 들어선 기분이다. 나갈 수는 있겠지?

난자채취일로부터 3일 후, 3일 배양 신선 배아들을 이식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만 35세 이상이라 3일 배양 배아는 3개를 이식할 수 있다고 한다. 나머지 2개는 냉동 보관 예정. 이것도 공짜는 아니다. 수술실에 들어가 모니터에 뜬 동글동글한 배아 사진을 보고 있는 사이, 의사 선생님이 순식간에 배아를 이식하신다. 너무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대로 회복실로 옮겨져 멀뚱멀뚱 천장을 쳐다보고 휴식하며, 배아들이 잘 자리잡기를 바랬다. 혹여 자궁 안을 돌아다닐 배아가 충격받을까 조심조심하며 걸음을 옮겨 병원을 나와 집으로 왔다. 점점 더 놀라워지는 영수증 금액은 66만원, 공단부담금은 130만원. 항상 나보다 더 많은 금액을 부담하는 공단에 감사하게 만드는 영수증 내역.

이틀 후, 5일 배양 배아 2개가 추가로 냉동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정된 9개 중에 배양에 성공한 배아는 7개. 시험관 아기 시술 1차에 성공하는 것이 로또라는 말이 있던데, 제발 그 로또가 내 것이 되어, 저 남아있는, 한달이라도 어린 우리 부부의 동결 배아들을 혹시 모를 둘째 임신에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매일 투약하는 프로게스테론 약제 때문인지, 정말 임신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임신이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인지 내내 임신 초기증상에 시달리다, 이식일로부터 13일 후 피검사를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다. 마침 남편도 쉬는 날이어서 함께 병원에 다녀와서 집 근처 카페에서 피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커피가 몹시 마시고 싶었지만, 기대감이 그보다 더 컸다. 하지만 피검 결과 6점대로 비임신. 원래 처음은 어려운 것이라며 우리는 또 다시 서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 후 남겨진 동결 배아 이식도 실패, 다시 난자 채취를 해서 진행한 신선 배아 이식도 실패. 내리 두 번을 0점대로 실패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위로의 달인이 되어갔고,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서로의 마음은 더욱더 돈독해졌다. 세 번의 실패 후 자궁내시경을 하고, 초음파에 나타나지 않았던 폴립들을 제거한 후 진행한 네 번째 시험관 아기 시술. 우리 부부에게 드디어 아이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아이가 딸임을 지난 주에 알게 되었다. 난임센터를 찾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순간이 우리 부부에게 왔을까. 아이를 기다리며 고민만 하던 시기에 난임부부 지원정책이 포함된 문재인 케어 소식을 뉴스로 접했고, 자주 접하다 보니 우리도 자연스레 난임센터를 찾게되었고,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잘 모르고 들어선 난임치료의 길이었다. 넘치는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거라 자신하며 내딛은 발. 함께 걷고있는 남편과 응원해주는 가족과 동료들, 정부 정책의 지원을 받아가며 아직도 가는 중이다. 셋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벌써 되돌아가도, 몇 번은 되돌아 갔을 길이다. 그 중 정부 정책의 지원은 든든한 후원자 같았다. 정책은 과학실험처럼 미리 연습해볼 수 없기에, 한 번에 완성될 수 없다. 그리고 주변 상황의 변화에도 지속적으로 대처하면서도 사용자들의 의견에 꾸준히 귀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정책이 오래도록, 효율적으로 유지되는 방안일 것이다. 남들은 이만큼의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임신에 잘만 성공하는데, 우리 부부는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 때, 당사자가 아닌 정부도 이 고민을 함께 하고 있음을 진료비 영수증에서, 조금씩 변하는 지원 세부사항에서 정책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임신 16주, 이제 안정기에 들어섰다. 이제는 난임부부 지원정책이 아닌 임산부 지원정책의 혜택을 받으며, 내 나이 마흔에 첫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다. 우습게도, 늦게 어렵게 임신하고도 아직 둘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항상 자매나 남매를 키우는 상상을 한데다 출산,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아직 겪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같은 남편이, 지금 같은 지원 정책이 있으면 또 한 번 기대해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지금은 우리에게 찾아온 “씽씽이”와 행복하게 함께할 시간.

* 건강보험공단에서 공모했던 문재인 케어 수기 공모전에 제출했던 글이다. 입상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추억이 그대로 묻어있는 글이기에 포스트로 작성! ㅎㅎ
아래 유튜브 링크는 그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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